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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끝나고 집에 오자마자 바로 써놓긴 했는데, 귀차니즘때문에 이제야 올리네요. 웹상에 공개된 공연사진이 없어서 좀 아쉽군요.

길을 지나다 "사랑을 주세요" 포스터를 봤을 때 얼마나 흥분됐는지 모릅니다. 이 연극은 퓰리처상을 수상했을 만큼 작품성도 상당하지만, 제겐 개인적으로 추억이 담겨 있는 연극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대학 연극 동아리에서 처음 출연한 작품이 바로 "사랑을 주세요" 였습니다. '처음'이란 것은 누구에게나 애틋한 기억이죠. 이제 막 대학을 졸업하며 동아리를 떠나려는 시점이라 더 애틋한지도 모르겠습니다. "사랑을 주세요"가 바로 제가 연극을 사랑하게된 계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닐 사이먼이란 작가는 지문을 상당히 자세히 쓰는 특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무대 구조나 인물들의 캐릭터가 제가 했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더군요. 옛 추억의 감상에 빠지기에 더 없이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배우들이 대사 하나하나 할때마다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습니다. 하나의 대사를, 하나의 동작을 완성하기 위해 그렇게 많은 연습을 반복했었지... 아! 저땐 저렇게 표현했으면 더 좋았겠구나...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봤습니다. 그러고보니 벌써 5년전 이야기네요. 직접하는 공연이 심하게 땡기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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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세요"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유태인 가정에서 일어난 이야깁니다. 나치 치하에서 받은 상처로 마음을 닫고 살아가는 할머니는 살아남는 것이 가장 최우선이라고 생각하죠.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야만 하구요. 그래서 자식들을 굉장히 강하게 키웁니다. 사랑이나 따뜻함 따윈 사치지요. 부족한 사랑의 결과로 할머니의 자식들은 하나씩 장애를 가진채 성장하게 됩니다. 정신지체인 벨라, 숨넘어가면서 얘기하는 거트, 나약한 울보 에디, 너무 강해 건달이 돼버린 루이..

할머니와 벨라만이 사는 숨막히는 집안에 에디의 아들들인 제이와 아리가 들어와 살게되면서 그 깊숙하고 오래된 상처가 수면 위로 드러나게 됩니다. 할머니도 사랑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 어느 부모가 자식들에 대한 사랑이 없겠습니까? 사랑의 방법이 자식들을 험한 세상에서 살아남도록 강하게 키우는 것이었던 거죠. 제이와 아리가 살게된 이후 벌어진 몇가지 에피소드로 인해 할머니는 조그만 변화를 겪게됩니다. 사랑을 표현하는 것이 중요함을 깨닫게 된거죠. 내 아이들이 사랑을 그토록 갈구하고 있었구나.. 하는 것을 알게된 것이죠. 순간의 깨달음으로 모든 것이 확 변하진 않겠지만 점차 좋아질 것이란 느낌을 남긴 채 극은 막을 내립니다.

다소 올드스타일의 극입니다. 제가 LP세대는 아니지만 그런 느낌을 주는 극이 아닐까합니다. 남녀간의 러브스토리도 아니고, 자극적인 코미디도 아닙니다.(아, 노출은 있군요) 정극스타일이고, 무대도 굉장히 사실적이죠. 완전 아날로그스타일입니다. 극의 길이도, 대사의 길이도 상당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참 따뜻한 극입니다. 포근한 미소가 지어지는 극입니다. 자칫 지루할 수도 있는 요소가 많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습니다.작가가 워낙 친절해서 하고자 하는 말이 장대사에 다 녹아있구요. 극의 인물들이 벌이는 코믹한 에피소드들이 워낙 양념을 잘 해주고 있거든요. 재미와 감동을 동시에 줄 수 있는 드문 작품이죠. 신나게 웃다가 울 수 있는 작품이고, 웃기만 하다 잊혀지는 작품이 아닌 뭔가 남는 작품입니다.

여기에 배우들의 연기도 빛이 났습니다. 특별히 벨라역의 정경순씨와 루이역의 장두이씨의 연기가 발군이었습니다. 다른 배우들도 물론 굉장히 잘 소화해냈지만요.

어쨌든 이 극은 사람들이 사랑을 얼마나 갈구하는 지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사랑 하나로 얼마나 많은 것들이 바뀔 수 있는가를 이야기하고 있죠. 하지만 마음 속에만 간직하고 있는 사랑은 소용이 없습니다. 옆 사람에게 그 사랑을 보여줘야지요. 사랑은 표현되어야 비로소 진정한 사랑이 됩니다. 표현된 사랑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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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2/25 19:52 2009/12/2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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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감탄을 하고 왔습니다. 파격적으로 자연스러운 공연스타일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어서 좋았습니다. 요새 인간에 대해 냉소적인 공연과 비극적인 공연을 많이 보는 바람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 공연으로 훈훈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됐네요.

이게 바로 진짜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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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이래도 되나?' 혹은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세르쥬의 효과"는 현실 같은 연극입니다. 무대는 소박하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TV, DVD 플레이어, 오디오, 책, 탁구대 등등. 진짜 과자, 피자, 와인에 진짜 자동차까지 등장합니다. 조명은 형광등입니다. 그러나 과장된 연기, 관객을 의식한 연기는 없습니다. 배우들의 얼굴보다 등판을 훨씬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승전결로 맺어지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냥 일상의 한조각을 보여줄 뿐입니다. 지난번에 본 "도쿄노트"와 비슷한 느낌도 있는데요. "도쿄노트"가 엿듣는 느낌이었다면 "세르쥬의 효과"는 벽에 구멍 뚫어 놓고 엿보는 느낌이랄까요.

세르쥬는 일요일 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취미입니다. 이름도 거창하죠. "헨델 음악에 맞춘 회전효과" "바그너 음악에 맞춘 빛의 효과" "존 케이지 음악에 맞춘 레이저 효과" "빅 체스넛 음악에 맞춘 폭죽 효과"와 같은 것들입니다. 근데 거창한 이름에 비해 공연은 너무나 허접합니다. RC카에 폭죽을 꽂고 달린다거나 음악에 맞춰서 헤드라이트를 깜빡거리는 정도죠. '이게 뭥미?' 하는 어색한 공기가 객석에도, 무대에도 형성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일상적인 어색함, 그 어색함이 주는 간격이 이 공연의 웃음포인트이자 관전포인트입니다. 별 내용 없는 이야기지만 보는 내내 킥킥거릴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폭소도 터지구요. 어쩜 이렇게 만들 수 있는지. 연출자의 연출력과 세르쥬의 연기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세르쥬의 친구들은 한국에 와서 모집한 일반인들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공연하는 도시에 가서 친구들을 모집한다고 하네요. 연습도 거의 안했고 특별한 대사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극적 연기가 아닌 일상의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세르쥬가 친구들을 어찌나 멋지게 받쳐주던지 전혀 튀지가 않더군요. 세르쥬도 일반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말이죠. 이런 연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대단하더라구요.(저도 세르쥬 친구에 지원해보고 싶었는데 대학원 입시의 압박으로 ㅠㅠ)

소통하고자 하는 세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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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세르쥬는 어설픕니다. 세르쥬의 공연도 어설픕니다. "세르쥬의 효과" 라는 연극도 왠지 어설픕니다. 그런데 그런 세르쥬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세르쥬가 어느 이야기 속 멋진 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우리의 모습과 더 닮아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 아닐까요?

세르쥬는 매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만 그다지 활발하거나 대인관계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친구들과도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구요. 다만 소통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합니다. 바로 공연이죠. 공연이 썩 멋지지는 않지만요. 어쨌건 친구들은 세르쥬의 공연을 계기로 모이게 됩니다. 모여서 얘기하고 와인을 마시고 피자를 먹습니다. 어색하지만 즐거워보입니다. 왠지 훈훈합니다.

세르쥬는 관객들과도 소통을 시도합니다. '금강제화' '롯데리아' 'GS홈쇼핑' 같은 한국의 상호를 대사 속에 등장시키고, 간단한 대사는 한국말로 합니다. "빨리요" "배웅해줄게" "뭐 좀 마실래?" "코트 받아줄게" 와 같은 말들입니다. 별거 아닌데 재밌고 기분이 좋습니다. 최대한 관객 눈높이에 맞추는거죠. 현지 일반인 친구 모집도 그런 맥락일 겁니다. 실제로 객석 반응도 좋았구요. 긴 대사는 일반인 출연자가 통역하는 방식을 택해서 자막 사용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다가가고 싶지만 어색해 하고 방법을 모르는 게 현대인의 모습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점점 단절되어가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꼭 세련된 방법이 필요한 걸까요? 소통을 위한 노력과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세르쥬처럼 투박하게라도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요.


이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모두 인용의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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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1/20 01:45 2009/11/20 01:45


  1. Phoebe
    2009/11/20 11:54
    신선하기도 하고 나름 재미도 있겠네요.^^
    • basecom
      2009/11/20 13:49
      네^^ 해외초청공연들이 좋은건 다들 한가닥하는 공연들이기때문이에요 ㅎㅎ 자막 보는 불편함이 있긴하지만.. 다 이유가 있어서 초청까지된거니까^^
  2. 모모군
    2009/11/20 13:40
    독특한 연극이겠습니다. 저도 세르쥬의 친구로 초대 받고 싶어졌습니다. ㅎㅎ
    • basecom
      2009/11/20 13:51
      제가 얼마나 세르쥬의 친구로 초청받고 싶었는지 ㅠㅠ 무대에서 피자랑 와인을 진짜로 먹는데.. 샘나더라구요 ㅎㅎ
  3. 드자이너김군
    2009/11/20 18:04
    오~ 뭔가 심오하게 재밋을것 같은.. ㅋ
    정말 리얼리티군요..+_+
    • basecom
      2009/11/20 18:08
      심오할 것 같은데 보면 하나도 안 심오해요 ㅎㅎ
      그냥 좀 어이없어서 킥킥대게 되는데
      보고나면 어? 하는 뭐 그런...^^;
  4. gemlove
    2009/11/20 21:19
    신기하네요 ㅎ 연극이라는 느낌이 안들꺼같아요 ㅎ 마치 일상생활을 제3자가 관찰하는 느낌? ㅋ 근데 소통을 시도한다고도 하니 ㅎㅎ
    • basecom
      2009/11/20 23:12
      네 맞아요. 일상생활을 제3자가 관찰하는 느낌이죠 ㅎㅎ 어차피 연극이나 모든 공연예술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하는 게 목적인데, 그럴려면 공감할 수 있게 해야하거든요.
      직접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하는 부분은 없지만 공감대형성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소통한다고 생각했어요^^
  5. 김뽀
    2009/11/21 13:41
    색다른 공연인것 같아요^^
    저도 훈훈함을 함께 느끼고싶어요~~
    • basecom
      2009/11/21 17:12
      ㅎㅎ 세르쥬는 이미 프랑스로 돌아갔을 것 같고.. 다른 훈훈한 공연을 추천해드려야겠네요. 마침 연말이라 훈훈한 공연시즌이긴합니다 ㅋㅋ
  6. 탐진강
    2009/11/22 17:59
    좀 독특하고 재밌는 연극인 듯 합니다.
    연극을 좀 봐야 하는데 요즘은 못보고 있어요ㅠㅠ
    • basecom
      2009/11/22 18:30
      네 ㅎㅎ 해외초청작들은 기회가 있으면 꼭 보세요. 언제 다시 우리나라로 공연올지 모르니까^^
  7. 감성PD
    2009/11/23 15:06
    특이한 연극인 것 같군요...
    어색해하지만 꾸준한 소통을 하려는 모습이 좋아보여요.
    • basecom
      2009/11/23 15:57
      네 ㅎㅎ 연극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필요한 자세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니까 참 좋았어요^^
  8. 분홍별장미
    2009/11/24 16:39
    은은한 즐거움이 있을것 같네요.
    또다른 나를 볼수있는 계기도
    될것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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