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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동 1번지 동인페스티벌에서 "크리스마스캐럴"을 올린다고 했을 때 스크루지 이야기는 아닐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무거운 내용일 줄은 몰랐습니다. 아마도 낚인 관객이 꽤 있을 것 같네요. 크리스마스 시즌에 하는 크리스마스캐럴에 살인얘기가 나올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아무튼 전 이렇게 생각할 거리를 던지는 연극이 좋은 것 같습니다. 런닝타임이 짧고 결말이 너무 갑작스럽긴하지만 왠지 실험적인 느낌을 주는 게 혜화동1번지란 극장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구요.



일상적인 연말, 대학동창이 무참하게 살해됐다는 소식이 전해져옵니다. 근데 좀 이상합니다. 슬퍼하거나 분노하지 않습니다. 고민하고 걱정하고 숨깁니다. 장례식장에 가지 않습니다. 대책회의를 합니다. 잘 아는 사이는 맞는 것 같은데, 대체 무슨 사이일까요?

알고보니 살해당한 여자는 대학동창인 세 남자의 공동 잠자리 파트너였습니다. 또 그런 목적으로 살해당하던 날에 모두가 함께 만났었구요. 그럼 어느정도 이해는 갑니다. 살인용의자로 지목받기에 딱 좋은 상황인데다 이런 사실이 집에 알려지면 곤욕스러운 일이니까요. 그래도 수많은 잠자리를 같이 했던 여자가 죽었는데 슬픔이 전혀 보이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살인자에게 분노하는게 아니라 그x는 왜 그날 죽어서 곤란하게 만드냐며 이미 죽은 사람에게 분노하기까지 합니다. 현대의 인간관계라는 게 고작 이런걸까요? 자기욕심만 채우는?



현대의 인간관계가 삭막해진 것도 하나의 이유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마음으로한 살인'이 아니었을까요? 단지 성적인 욕구로 사랑도 없이 한 여자를 탐닉했던 세 남자. 서로가 한 여자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이후에도 서로 묵인하며 계속 탐닉했던 세 남자.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런 목적으로 그 여자를 만나러온 세 남자. 여자는 대학때보다 좀 똑똑해진 듯 했습니다. 마치 대학 때 당한 것을 복수라도 하듯 잘근잘근 남자들을 압박했죠. 그때 모두가 이미 살의를 강하게 느끼고 마음으로 살인했던 것입니다. 이세상에서 사라지길 바랐던 것이죠.

막상 실제로 죽고 나니까 남자들은 왠지 모를 죄책감에 시달렸던 것 같습니다. 혹시 내가 죽인건 아닐까? 하며 자신을 의심해보기도 하구요. 경찰조사에서도 왠지 쫄리구요. 성경에 "마음으로도 살인하지 말라" 는 말이 있죠. 그게 떠오르더군요. 여러가지 생각을 해볼 수 있었습니다.

이제 아쉬웠던 점을 그냥 몇가지 얘기해보고 싶은데요. 전반적으로 조명이 너무 어두워서 얼굴에 자꾸 그림자가 생기더군요. 표정을 제대로 보지 못해서 아쉬웠어요. 그리고 혜화동1번지 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의자가 너무 불편해요. 공연시간이 짧은데도 힘들더군요. 결말이 너무 확 끝나버린것도 아쉬웠습니다. 원작 소설(이 연극은 김영하의 동명소설이 원작입니다.)에서도 그랬을 것 같지만, 좀 어안이 벙벙하달까요. 음악과 조명이 끝나는 분위기를 내서 그렇지 내용으로만 봐선 전혀 끝난걸 눈치채기 힘들었습니다. 또 형사들의 연기는 맥을 탁 끊어놓더군요. 다른 배우들의 연기가 매우 뛰어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냥 무리 없이 흘러가고 있는데 좀 과하게 끊어져서 안타까웠습니다.

마지막으로! 관객매너에 대해서 얘길 하고 싶습니다. 지난번에 본 "사랑을 주세요" 때도 느꼈던 건데요. 무대에 아는 사람이 나왔다고 객석에서 심하게 반응 좀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번 공연 때는 진지한 장면에서 계속 소리내서 웃어서 얼마나 신경쓰였는지 모릅니다. "사랑을 주세요" 때는 계속 지들끼리 떠들고요. 도대체 다른 관객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죠. 역지사지로 생각 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저도 아는 배우가 몇명있어서 그 심정을 이해는 합니다. 아는 사람 나오면 그냥 막 웃길때가 있죠. 그 웃긴걸 옆사람이랑 공유도 하고 싶죠. 전 그럴때 참다참다 안되면 입막고 몸 수그리고 웃습니다. 제발 매너 좀 지켰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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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2 13:27 2010/01/02 13:27


  1. dentalife
    2010/01/05 09:30
    좋은 리뷰 잘 보고 갑니다. 연극 본지 참 오래되었네요
  2. 평범
    2010/01/06 16:38
    인간에 대한 추악한 묘사로 냉소를 팍팍 날리는 김영하 작가 답네요.

    봄에 오빠가 돌아왔다가 무대에 오른다고 해서 기대하고 있습니다. ^^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basecom
      2010/01/06 22:17
      아, 김영하 작가의 스타일이 그런건가요?
      그러고보니 요샌 실용서적 외에 책을 잘 보지 않네요..

      방문해주셔서 감사해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3. 모과
    2010/02/28 22:47
    대전에도 연극이 자주 공연하고 있는데 제가 아직 도시가 맟설어서 못다니고 있습니다.^^
    • basecom@basecom.kr
      2010/03/08 04:13
      블로그를 방치해뒀더니 댓글이 좀 늦었네요ㅠ
      대전에도 연극 공연 자주 하는군요.
      연극 대중화의 문제점 중 하나가 지방에서 공연을 접하기 힘들다는 점인데.. 좀 사정이 나아진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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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한 고대 비극의 키워드는 '운명'입니다. 비극적인 결말은 맞이하는 것은 결국 그 인물의 '운명'이라는 것이죠. 어떤 인물들은 비극적인 결말이 빤히 보이는 데도 그 비극을 향해 돌진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더 비극적이고 더 슬프기도 하죠. 물론 그 결말이 너무 빤히 보이기 때문에 진부하기도 합니다.

굉장히 유명한 비극 중에 '오이디푸스' 라는 극이 있죠.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을 하게되는 오이디푸스, 그걸 알고 어머니는 자결을 하고 자신은 눈알을 뽑아버린다는 오이디푸스. 현재까지도 많은 영화, 연극, 드라마의 이야기 원형이며 '오이디푸스 컴플렉스' 라는 용어까지 만들어낸 아주아주 유명한 작품이죠. 스핑크스 수수께끼도 나오구요.

하지만 작품을 제대로 읽어보거나 본적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 굉장히 기대를 하면서 봤어요. 오래된 극이기때문에 지루하거나 진부하진 않을까 걱정도 하면서요.

극은 기대이상이었습니다. 스토리는 굉장히 압축적으로 진행이 됐습니다. 모두가 아는 얘기이기도 하고, 아마 고대 비극이기때문에 긴 대사가 원작엔 많았을 텐데 아주 담백하게 진행이 됩니다. 간결하고 지루하지 않으니 흡입력을 지니게 되더군요. 러닝타임이 길지도 않았지만 보는내내 지루함을 느낄 수는 없었습니다.

빔프로젝터를 이용해 벽에 영상을 보여주는 것이 꽤 참신하고 좋았습니다. 무대장치는 없다고 봐도 좋을 정도로 간단합니다. 대신에 그것을 영상이 커버를 해줍니다. 아주아주아주 참신하다거나 아주아주아주 신기한 그런것은 아니지만 동인페스티벌다운 극이랄까요.

이제 본격적으로 극 이야기를 해볼까요. 담백한 메인스토리에 지루하지 않게 양념을 들어갔더라구요. 오이디푸스의 나라를 우리 한국에 살짜쿵 비유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물론 MB에 은근하게 겹쳐주시구요. 촛불집회도 나오구요. 숭례문 탄 것도 나오고, 시민들 먹고살기 힘들어 하는거, 대운하 언급도 잠깐 나오고... 이런게 은근한 재미를 주더군요. 시원하기도 하면서요.

양념이라지만 메인과 전혀 관련이 없진 않을 텐데 이게 오이디푸스랑 무슨 상관일까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이 작품의 연출자는 오이디푸스 비극을 단지 '운명' 때문이었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은 모양이었습니다. 결국엔 하늘이 정해준 운명때문에 비극을 맞게 된게 아니라 오이디푸스라는 인물 자체의 잘못된 판단, 욕심이 오이디푸스를 비극으로 이끌었다는 얘길 하고 싶은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이디푸스는 길거리에서 자신의 아버지를 만나죠. 양보 문제로 시비가 붙고, 결국 아버지를 죽이게 되는데요. 여기서 오이디푸스는 굉장히 건방지게 그려집니다. 어른도 공경할 줄 모르고 자신만 생각하는 그런 모습으로 나오죠. 그리곤 스핑크스의 수수께끼를 풀고 영웅으로 추앙받자 왕이 되고 그곳의 왕비(어머니죠)를 욕망에 이끌려 갖게됩니다. 왕이 되서도 좋은 왕이 아니라 오만함에 갖혀 백성들을 등한시하는 좋지 않은 모습으로 표현이 됩니다.

오이디푸스가 좀 욕심을 덜 냈더라면, 좀 건방지지 않았다면, 오만하지 않았다면 비극까지 치닫진 않았을 겁니다. 자신도 나중에 그런 후회를 하면서 눈알을 뽑습니다. 하늘이 정해주는 운명이 문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문제였던 겁니다.

지난 학기에 어떤 교수님이 하신 말씀이 기억나네요.

운명이란 바로 자신의 성격이다. 성격은 쉽게 바꿀 수가 없다. 그렇기에 비극의 주인공들이 결말을 알면서도 성격을 버리지 못해 비극에 치닫는 것이다. 성격을 바꿀 수 있다면 운명도 바뀐다.

교수님 말씀을 듣고도 많은 공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극을 보고 나니 그 말씀이 생각나네요. 결론은 자기운명은 자기가 개척해나갈 수 있다. 점 같은 건 믿지 말자. 라는 아주 일반적인 교훈으로?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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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07 01:20 2009/05/07 0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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