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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연극을 봤는데, 내용이 잘 이해가 안되고 알쏭달쏭하다. 보통 이정도 난해함이면 지루하거나 답답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단순히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흡입력이 있는 공연이었다. SPAF의 해외초청작들은 대부분 일정량의 난해함을 기본으로 지니고 있어서 동행할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누구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입장하니 이미 배우들은 무대 위에 나와있었다. 뭔가 불안하고 경계하는 눈빛과 몸짓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떤 상황인걸까?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공연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형태를 띄는 공연들은 종종 있지만 이토록 잘 살린 공연은 드물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 공연 예매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딱 들면서 기대감이 증폭될 정도니 말이다.

공금을 횡령하고 직장에 나오지 않고 있는 아빠를 잡기 위해 찾아온 경찰은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가족들은 심장마비였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이다. 뭔가 감추는 것이 확실하다. 딸이 처음 입고 있던 의상은 왠지 이를 상징하는 듯 했다. 점퍼는 벽지무늬와 같은 무늬였으며, 점퍼 안은 바로 속옷차림이었다. 점퍼와 집의 벽을 연결해보면 집 안에 여인의 속옷차림처럼 은밀하고 숨겨야할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게다가 딸은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이는 점퍼로 감추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 치부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딱 여기까지 따라가고 이후로는 모호함 투성이였다. 대사와 동작들이 독특했다. 형사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어색한 순간 혹은 변명 생각하는 순간을 마치 아브라카다브라 춤같은 모션으로 표현하고, 벽을 뚫고 퇴장하기도 하고, 탭댄스 같은 스텝을 구사하기도 하고 셔플인지 막춤인지 알 수 없는 춤을 추기도 한다. 관객에게 한국말로 '시끄러' 라고 할 정도로 묵념을 강요하기도 하고 관객의 가방과 옷가지를 뺐기도 한다.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요소임과 동시에 모호하고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였다.

어쨌든 형사와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누가 왜 아빠를 죽였냐는 것인데 끝까지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극중 꿈인지 생각인지 다른 유사사건인지 모르게 몇 가지 일가족 살해사건이 브리핑된다. 마치 수사결과를 발표하듯이. 맨처음 엄마가 일가족을 독살했다는 사례를 브리핑하면서 딸이 마당에 죽은 고양이를 이야기하고 형사가 갑자기 죽을 땐 이게 진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뒤로 베이스 연주자는 모든 가족이 동반자살했다는 노래를 하고, 딸은 가족소풍 중에 딸이 총으로 가족 모두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형사는 아빠가 가족 모두를 죽인 이야기를 한다.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데  가족들에게 진정제를 먹인 뒤 자는 중 돌로 쳐죽였다는 이야기도 하고, 공연 내내 기어다니거나 구석에 짱박혀있던 아들은 온 가족이 칼에 찔린 그림을 그렸다. 마치 영화 "살인소설"의 필름들이 생각난다.

뭘까? 뭐가 진실일까? 살해동기로 의심되는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은 가장 편안하고 아늑하고 믿을 수 있는 안식처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가족이 개인을 힘들게 하기도 하며 그 개인들은 가족을 전부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러한 동기들로 인해 아빠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정말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볼 수도 있는걸까. 아리송하다.

덧)
폴란드가 자랑하는 곰브로비치라는 작가의 단편 2개를 엮어서 만든 공연이라는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딸 역을 맡은 배우의 매력 발산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연기도 외모도 인상적이었다. 배우의 매력과 캐릭터의 매력이 최적의 비율로 섞여있었다.

무대는 단촐한 듯 보였는데 뚫리는 벽이나 노크하면 모든 필요한 소품을 뿅하고 워프시켜주는 서랍 등 재밌는 장치들이 숨겨져 있었다.

자막이 굉장히 매끄러워서 감동했다. 싱크가 잘 맞는 것은 물론, 잘 보이고 배역 별로 색을 다르게 해서 보기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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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23:02 2013/11/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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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 곳곳의 거리로 이끌렸다. 방식은 여러가지였다. 문자, 쪽지, 전화, 음성, 연속 사진, 그리고 손 붙잡혀 뛰기까지. 헤드폰에선 음악과 함께 내러티브들이 들려왔다. 이 색다른 이끎과 소리들은 서울의 거리를 바라보는 내 시선을 살짝 비틀어 놓았다. 서울의 거리가 무대로 치환된 것이다. 그 거리에서 나는 주인공이면서 동시에 관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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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키는 대로 거리를 바라 봤다. 천천히 걸어가면서, 잠시 멈춰서서, 벽에 기대서, 옥상에 올라가서 봤다.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들이 눈 앞에 펼쳐졌다. 골목길과 대로변, 시장과 백화점, 다방과 카페. 대비되는 풍경들이 교차했다. 때론 시간이 멈춘 것 같았고, 때론 내가 공중에 붕 떠 있는 것 같았다. 참 묘했다. 서울 한복판에서 세상과 분리된 느낌을 받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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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도 보인다. 시장 안의 사람들과 백화점 안의 사람들, 장사 안되는 다방 주인과 바쁜 카페 알바생, 무표정한 거리의 어른들과 천진난만한 표정의 어린아이들, 외국인들, 호텔 안의 사람들, ... 재밌다. 그동안 사람을 단지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마음에 여유가 없었던 걸까?

똑같은 말을 반복하기도, 서로 다른 말들을 이곳 저곳에서 던지기도 하는 내러티브들은 내 생각을 자극했다. 잊혀졌던 생각,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떠올랐다. 이따금은 내 마음의 소리를 듣는 것 같기도 했다. 그동안 가까운 것들에 너무 무관심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자신을 포함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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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와 전혀 다른 공연이었지만 아주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아직도 잔상이 머릿속을 뱅뱅 맴돈다. 앞으로 또 이런 공연을 만날 수 있을까? 아니면 누군가 루트를 정해주지 않아도 나 스스로 세상을 비틀어 볼 수 있을까?

뱀발: 사진을 많이 찍을걸 그랬다. 왠지 사진 찍기에 신경을 분산시키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역시 사진이 아쉽다. 특히 지령 쪽지와 사진을 반납해야 한다는 걸 알았으면 미리 찍어두는 건데... 트래킹 어플도 켜둘 걸 그랬다. 기록을 많이 남기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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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1/07 22:09 2012/11/07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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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베드를 모티브 삼아 독재에 대해 이야기하는 광대난장. 재밌고 통쾌하다. 그리고 씁쓸하다.

극장 로비에 들어선 순간 이미 공연은 시작됐다. 분칠을 한 배우 두 명이 로비를 누비고 있었다. 종이인형을 나눠주며 관객들에게 장난을 거는 익살스러운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극장 입구에도, 무대 위에도, 객석에도 광대로 분한 배우들이 자연스럽게 녹아있었다. 어텐던트를 대상으로, 관객을 대상으로, 서로를 대상으로 익살스런 상황극을 펼치고 있었다. 그렇게 서서히 관객들은 극 속으로 빨려들어갔다. 공연을 시작한다는 한마디 말조차 필요없었다. 극장 곳곳의 광대들이 무대 위로 집합하는 순간 관객들은 이미 공연을 볼 준비를 마쳤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아, 정말 맘에 드는 시작이었다.

공연은 시종일관 관객을 잡아끌었다. 일단 배우들이 몸을 정말 잘 쓴다. 표현력이 뛰어날 뿐 아니라 재미도 있다. 특히나 머리부터 발끝까지 꿀렁꿀렁대면서 객석으로 다가오는 도입부는 압권이었다. 특별한 무대장치도 소품도 없었지만 배우들 그 자체로 관객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했다. 개인적으로 관객에게 말거는 공연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편이다. 대부분은 컨셉에 맞지 않는 억지 설정이라서 괜히 분위기만 가벼워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공연은 그냥 너무 자연스럽고 전혀 깨지않아 좋다. 광대난장이라는 컨셉이 상당히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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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고 단순히 웃기기만한 난장판은 아니다. 맥베드를 모티브삼아 독재와 권력투쟁에 대해 이야기한다. 권력을 잡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의 피를 보는 것이 과연 옳은가? 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그리고 정수장학회까지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권력자들의 껍데기를 벗겨 적나라한 모습을 보여준다. 어찌보면 전형적인 풍자다. 통쾌하다. 수많은 종이인형들이 찢기고 불에 타는 장면에선 소름이 돋았다. 그 뒤 황급히 종이인형들의 잔해를 청소하고 먼지가 폴폴 날리는데도 아무렇지 않은 척, 정의라는 이름으로 명분을 만들어내는 장면에선 왠지모를 전율이 일었다.

사실 독재와 권력에 대한 풍자는 흔해빠진 이야기다. 이 극은 흔히 영웅으로 알려진 맥베드 이야기를 사용함으로써 풍자의 씁쓸한 뒷맛을 강조했다. 보통 풍자극이 그냥 커피라면 이 극은 TOP랄까. 권력자들은 언제나 그럴듯한 명분을 들고나와 대중을 휘어잡는다. 생각해보면 그렇다. 아직도 어떤 독재자들은 영웅으로 기억되고 권좌에서 물러난 뒤에도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혹시 우리는 지금도 조종당하고 있는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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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히 이야기는 지루하고 황당할 정도로 간단하다. 근데 어렵다. 뭘 말하고 싶은지 도대체 알 수가 없다. 자연을 살리자는 공익 연극인가? 아니면 벌에 탐구하는 다큐멘터리 연극인가? 그것도 아니면 벌에 대해 알려주는 교육용 연극인가? 공연을 보는 내내 머리를 굴려봤지만 도저히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희곡 자체의 주제 내지는 목표가 불분명해보인다. 작가가 '벌'이란 소재로 뭔가 강한 창작욕구를 느낀 모양이지만, 아직 정제 되지 못해 불순물이 둥둥 떠다니는 느낌이다. 지나치게 관념적이고 시적이다.

극이 시작되면 배우 둘이 나와 이 극은 벌에 관한 이야기라면서 벌이 주인공인 것처럼 소개한다. 날개는 두 쌍이고 머리,가슴,배로 구성되고 벌의 종류는 뭐뭐뭐뭐가 있는데 이번 이야기는 꿀벌에 대한 이야기라면서 박진영의 "허니"에 맞춰 춤까지 춘다. 별로 재미도 없고 지루한 시간이었지만, 벌이 소재 정도가 아닌 주인공 수준이라면 저정도 거창한 소개쯤을 참아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극을 보면 볼 수록 속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벌 날개가 두쌍이고 눈이 어떻게 생겼고 하는게 극을 이해하거나 몰입하는데 도대체 어떤 도움이 되는지 내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꿀벌이 꿀 1kg을 만들기 위해 키스를 몇 번 해야 하는지, 얼마나 많은 거리를 날아다녀야 하는지를 설명하기 전에 암환자가 꿀벌로 뒤덮힌 이후에 왜 발정이 났는지부터 설명해야하는 거 아닐까? 그러다가 왜 갑자기 다중이가 되는지 설명해야하는게 아닐까?

암환자한테 꿀벌이 머물다가 떠나간 후에 왜 택배기사는 벌독알러지가 나았을까? 하도 많이 쏘여서 내성이 생겼나? 왜 겜블러 아저씨는 다시 도박을 하겠다고 나섰을까? 죽는 사람 보니까 어차피 죽는 인생 좋아하는 일이나 하다 죽자는 맘을 먹었을까? 네팔노동자는 왜 떠나는걸까? 이 일련의 사건들이 대체 어떤 하나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걸까?

사실 작품 외에 다른 부분들은 괜찮았다. 배우들이 각각 다른 색의 옷을 입고 조명을 받으니 장면 장면이 생동감 넘쳤다. 특히나 벌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는 듯한 장면에선 연출력이 돋보였다. 벌을 표현하는 안무와 연기도 볼만했고, 벌의 윙윙대는 소리도 실감났다. 그치만 다 무슨 소용인가? 껍데기에 불과한 것들이다.

원래 한 번 더 볼 생각이었는데.. 볼까말까? 다시 보면 뭔가 새로운걸 깨달을 수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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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8 23:52 2011/10/18 23:52


  1. Isabel
    2011/10/19 11:06
    저도 이 공연 봤어요^^ 저는 나름 재미있게 봤는데, 그냥 편한 마음으로 정신을 놓고 봐서 그런지 연기도 만족스러웠고 무대도 마음에 들었거든요.. 한 번 더 보고 싶은 공연이에요!
    • basecom
      2011/10/19 13:00
      저도 무대랑 연기는 맘에 들었어요. 내용이 이해가 안돼서 ㅠ 사실 좀 컨디션이 안좋았는데 그것때문에 이해못하나.. 이러면서 봤어요 ㅎㅎ
  2. 비밀방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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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씨는 선선했고 공연은 신선했다. 도저히 공연에 집중할 수 없었지만 도리어 그것이 매력포인트였다. 공연 관람을 하는 1시간 남짓의 짧은 시간동안 내 정신과 시선은 이리저리 왔다갔다하느라 분주했다.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이 스치는 걸 막을 방도가 없었다.

공연은 서울역 KTX 플랫폼에서 이루어졌다. 배우들은 군중 속에 섞여있었다. 관객들은 계단에 헤드폰을 쓴채 옹기종기 모여 배우들의 일상적인 대화를 엿듣고, 일상적인 행동을 엿봤다. 이게 그야말로 진짜 사실주의 아닌가? 세트는 완벽했으며, 효과음은 전혀 인위적이지 않았다. 즉석에서 섭외된 엑스트라들의 연기는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연극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냥 일상을 훔쳐보는 것 같기도 하고, 3D 영화를 보는 것 같기도 했다.

주인공들의 이야기보다도 그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더 재밌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모르는 이야기를 우리만 알고 있다는 사실이 즐거움에 은근한 우월감을 더했다. 마치 플래시몹을 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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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로 헤드폰을 쓴채 계단에 앉아있으니, 지나가던 사람들은 어리둥절해한다. 뭔가 진지하게 쳐다보고 있지만 관객들이 바라보는 방향에 눈에 띄는 것이라곤 KTX 시간 안내 전광판뿐이다. 배우들은 군중 속에 섞여있어 쉽사리 발견되지 않는다. 몇몇 사람들의 "이거 뭐하는거야?" 하는 소리가 배우들의 무선마이크를 타고 굉장히 크게 들린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어떤 사람은 배우에게 다가가서 뭐하는건지 물어보기도 한다.(공연 중단 위기였다.)

이 공연의 매력이면서 아쉬운 점이, 헤드폰을 꼈지만 소음이 너무 잘 들어와서 배우들의 대사가 중간중간 안들린다는 것이다. 여기에 동시통역까지 들어가니 정신이 없었다. 더구나 통역사의 발음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이러한 점이 매력인 이유는, 모르는 사람의 일상을 엿듣는 다는 측면에선 이게 굉장히 자연스러운 현상이기 때문이다.(그래도 답답한건 어쩔수 없더라.)

게리와 스티브는 따뜻하다. 겉보기엔 찌질해보이는 둘이지만, 서로를 받아들이고 신뢰하고 의지하고 걱정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다. 반면 앨런과 심리학자는 차가운 느낌이다. 겉으로 친절하고 상냥하며, 사회적 지위도 돈도 있지만 결국 상대방에게 자신이 원하는것을 얻어내기 위한 포장에 불과하다.

현대사회에서 따뜻함은 점점 촌스러움이 되어가는 것 같다. 우리는 삭막함을 우려하지만, 삭막함을 추구 하는게 아닐까? 난 누군가에게 따뜻한 사람인적이 있었을까?

올해는 SPAF에서 이거 달랑 하나 보게됐는데 정말 잘 골랐다. 만족스러운 공연이었다. 사진도 여러 장 찍혔는데 조만간 웹에서 보게될 일이 있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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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0/15 23:13 2011/10/15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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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를 폰에 미리 써두었는데, 까먹고 이제야 올리네요;;)

한양대 연영과 50주년 기념 공연이라고 해서 기대를 굉장히 많이 했는데 아쉽습니다. 배우들도 보아하니 대체로 고학번에 대학원생까지 있던데 말이죠. 아마추어라는 관점에선 볼만한 공연이었지만 준프로라는 관점에선 실망인 공연이었습니다.
 
극초반은 특히나 최악이었습니다. 배우들의 기본기 서로간의 호흡 컨디션 모든게 엉망이 아니었을까 생각될 정도로요. 도저히 몰입이 되지 읺았습니다. 극 내용을 알고있으니 망정이지 몰랐다면 끝까지 내용파악조차 못할 지루한 관람을 하고 나왔을지 모릅니다.
 
햄릿은 상당히 많이 공연된 작품입니다. 그만큼 생명력이 있는 작품이라 다양한 해석과 표현이 가능한 작품이죠. 하지만 너무나 잘 알고들 있기에 뭔가 특색이 없으면 지루해지기 쉬운 작품입니다. 이번 공연이 그렇습니다. 시간배경을 모호하게 깨서 현대적인 요소를 가미하는 것은 별달리 특별한 아이디어가 아닙니다. 되려 요샌 고전들이 그렇게 공연되는게 흔하죠. 그렇게되면 배우들 대사도 좀 현대적으로 바뀌어서 연기하기가 편해졌을텐데 뭐 별로 감흥이 없더군요.
 
기본적으로 배우들의 발성발음부터 실망이긴했습니다.(주로 남자배우들) 막공이라 긴장을 했는지 대사도 많이 씹고 말이죠. 더 별로였던건 햄릿의 심리나 성격이 별로 깊게 묘사되지 않았단 점이죠. 햄릿하면 자동으로 우유부단이 생각납니다만 다르게 해석하는 이들도 많으니까 그건 좋다 이겁니다. 그럼 대체 뭐냐는거죠. 그냥 재수없는 왕자로 밖에는 보이지 않더군요. 딱히 재수없음에 고뇌하는 모습도 보이지 않구요.
 
스피디한 장면전환과 무대전환은 좋더군요. 흰벽?막?들이 움직이면서 공간들을 좁혔다 넓혔다 하더군요. 빠른 전환이 가능하면서도 많은 무대장치 없이 흰막에 조명을 쏴서 다양한 느낌을 내더라구요.
 
실망감만 토로한 글이 돼버렸는데 제 기대치가 터무니없이 높은건 아닐겁니다. 제가 인생처음으로 본 햄릿은 모예대 연영과 한 공연이었는데 상당히 잘봤구요. 셰익스피어의 또다른 비극인 맥베스도 모대학 연영과에서 한걸 봤는데 역시 잘봤습니다. 한양대 연영과 공연은 아마 많이 보게 될텐데 다음번엔 더 나은 공연을 보게되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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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12/15 21:59 2010/12/15 2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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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지는 좀 됐는데, 이런 저런 일들이 많아서 미뤄왔던 감상을 해봅니다. 공연 보고 감상을 엉터리로라도 하지 않으면 뭔가 마무리를 하지 않은 기분이 들어서요.

한양대 연영과의 여름레파토리로 올려진 공연입니다. 극의 내용을 가지고 집에 와서 검색을 좀 해보니까 오스카 와일드의 "환상 동화"를 각색한 극이더군요. 동화는 동환데 현실감이 풍부한 동화 2~3편이 무대 위에 올려졌습니다. 어른을 위한 동화라고 하면 잘 들어 맞는 표현 같습니다.

굉장히 흡입력 있는 도입

도입이 상당히 좋더군요. 막돌이 없이 막바로 시작했는데, 극의 도입부에서 공연 에티켓에 관한 당부까지 아주 코믹하고 자연스럽게, 게다가 효과적으로 전달해버렸습니다. 물론 극의 시공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시도겠지만 굉장히 신선했습니다. 그리고 본 이야기를 하기 전에 올려졌던 빨간 모자 이야기도 참 재밌었습니다. 관객 입장에서 보기엔 그냥 웃기려는 의도 뿐인 이야기였죠. 예전 웃찾사의 웅이 아버지였나요? 그 코너를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알맹이가 없어보이는 내용이었지만 극 초반에 진짜 배꼽 잡고 웃으면서 극에 쫙 빨려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특히나 배우들의 재치와 아이디어가 돋보였습니다.

아쉬웠던 본 이야기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자 극이 좀 늘어지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연습이 부족한건지 작품에 대한 분석이 부족한건지는 잘 모르겠는데요. 코믹한 부분을 할때와는 좀 다른 실망적인 모습을 몇몇 배우들이 보이더군요. 그러다보니 별로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건 아닌데도 극의 내용이 쫙 와닿지 않는 그런 부분이 있었습니다. 정작 핵심을 잡지 못한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재치 넘쳐서 즐거웠던 공연

그래도 극이 졸립지 않았던 것은 여러 부분 볼거리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도입부 뿐 아니라 극 중간 중간에 재밌는 부분들은 진짜 재밌었구요. 대부분이 1인 다역을 했는데, 사람 뿐 아니라 나무나 새 같은 역할까지 잘 소화해내더군요. 1인 다역을 하면서 관객을 혼란스럽지 않게 하는게 생각보다는 어려운데 요.(프로 배우들도 이를 잘 못하는 이들을 가끔씩 봅니다.) 뭐 저는 사람이 아니라 나무나 새를 할 때도 전혀 혼란스럽지 않았습니다. 참 즐겁게 관람을 했습니다.

사랑의 아픔에 대하여

사랑이 무엇보다 가치 있는 아름다운 감정이라는 데에는 대부분이 동의를 할겁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아름다운 사랑은 아픔이라는 감정을 옆에 데리고 다닙니다. 아프기 때문에 더 아름답기도 한 것 같구요.
 
첫번째 이야기에서 나이팅게일이라는 새는 사랑에 빠진 청년에게 고백을 위한 붉은 장미를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버립니다. 그러나 현실 세계에서 붉은 장미는 돈에 지고 맙니다. 청년은 차이자 마자 붉은 장미를 길에 버려버립니다. 사랑했던 여자를 포기한건 물론이구요. 청년의 사랑은 그저 열병 같은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을 진실한 사랑이 아니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나이팅게일은 엄청난 희생을 했는데 과연 누구를 사랑했던 걸까요? 청년? 아니면 진실한 사랑이라는 그 감정 자체? 모르겠지만 참 아픕니다. 현실은 순수한 사랑만으로는 헤쳐나갈 수 없는걸까요?

두번째 이야기는 더 슬픕니다. 공주의 생일파티에서 한 꼽추가 춤을 추자 공주가 상당히 즐거워합니다. 그리고 장미꽃 한송이를 던져주죠. 꼽추는 그 장미꽃을 받고 공주가 자신을 사랑한다고 생각하여 너무나도 좋아합니다. 그런데 우연히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되죠. 그 추한 모습을 보고 공주가 자신 따위 사랑하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깨닫고 맙니다. 그리고 마음이 찢어져버립니다. 여기서 꼽추 연기한 분의 연기가 참 멋지더군요. 아이들을 위한 행복한 동화라면 이쯤에서 공주가 진짜로 꼽 추를 사랑하고 있었고, 공주가 꼽추의 마음을 위로하여 꼽추가 다시 춤을 추게 되는 해피엔딩으로 끝 나겠지만, 공주의 마지막 말은 좀 무서울 정도였습니다. "다음부턴 날 즐겁게 해줄 애들은 마음을 갖 지 못하게 하세요" 였던 가요. 사랑은 아름답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면 참 슬프고, 비참해지기 까지 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극 전체를 통하여 뭘 전달하고자 하는지를 잘 모르겠더군요. 완전히 분리된 옴니버스가 아니라 동화를 읽어주는 아저씨가 존재해서 하나로 묶고가는 옴니버스니까 전체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게 분명히 있을 텐데 그걸 제대로 해주지 못한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극의 제목이 왜 "아기, 잘 자고 있는 지" 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서도 이야기 했지만, 정작 핵심을 잡지 못한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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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30 01:46 2010/08/30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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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봐라.

하루에 공연 두 편을 연달아 볼 기회가 생긴 즐거운 하루였습니다. 두 번째 공연인 "윤이상, 나비이마주"를 보는 중간에 갑자기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한 뉴턴이 했던 멋진 말이 떠오르더군요. "전 그저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봤을 뿐입니다." 라는 말인데요. 누군가가 "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위대한 발견을 할 수 있었나요?" 라고 물었을 때 했던 답변이랍니다. 이렇게 공연 두 편을 관통하는 생각이 문득 떠오르다니, 재밌더군요. '슈퍼 병렬 독서법'인가요. 그 주장이 일리가 있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죠.

세상 돌아가는 것에 둔감했던 고집쟁이 김밥 장인 이만근의 성장 드라마.

"내 맛이 어때서"의 '이만근 김밥집' 사장 이만근은 '김밥 장인'이라 불릴 만한 사람입니다. 10년간 김밥을 말면서 항상 좋은 국산 재료만 써왔으며, 성실하고 순수한 사람입니다. '진짜 부산 어묵'을 김밥에 넣는다는 맛의 비결도 가지고 있습니다. 진짜 부산 어묵이 들어가지 않은 김밥은 절대 팔지 않는 장인 다운 똥고집도 갖고 있습니다. 그덕에 '이만근 김밥'은 동네에서 인정 받는 명물이 되었지요.

문제는 어느날 '임실 할머니 김밥집'이 요란하게 등장하면서 시작됩니다. 임실의 '삭힌 단무지'를 앞세워 일단 맛에서 '이만근 김밥'을 앞서버립니다. 설상가상으로 '임실 할머니 김밥집'의 오사장은 사업수완도 좋아서 '이만근 깁밥집'은 순식간에 짜부라들고 맙니다. 이만근은 자존심 내지는 자만심 때문에 상대방의 장점 혹은 나의 단점을 분석하려는 시도를 전혀 하지 않습니다. 밑바닥까지 떨어진 후에야 상대의 김밥을 맛보고는 패배를 인정하고 체인점으로 들어갑니다.

잠시 다시 행복해지나 했더니, 오사장이 '삭힌 단무지'를 너무 비싼 가격에 공급하자 원상태. 이만근은 직접 임실로 내려가서 '진짜 원조 삭힌 단무지'를 공급받아옵니다. 대박이 납니다. 행복해집니다. 얄미운 오사장은 쫄딱 망합니다. 이 과정에서 오사장의 더러운 비밀들이 드러났기 때문에 더 고소합니다. 하지만, 이만근은 '이만근 다움' 을 잃어버립니다. 사치가 시작되고, 오사장 버금갈만큼 얄미워지기도 합니다. 결국 똑같은 인간인거죠. 이렇게 시니컬한 블랙코미디로 끝나기엔 좀 섭섭하죠. 기세등등하던 '진짜 원조 임실 할머니 김밥'의 이만근은 '삭힌 단무지' 공급에 문제가 생기자 다시 쫄딱 망해버립니다. 좌절하던 이만근은 김밥 재료가 나오는 꿈 속에서 뭔가 깨닫고 자신만의 메뉴를 개발하기로 하고 해피엔딩으로 극이 끝납니다.

사실 '임실 할머니 김밥' 사장이 굉장히 얄밉고, 인간미가 부족하며, 심지어 패륜까지 저지른 나쁜 캐릭터이긴 합니다. 그러나 김밥에 나쁜 짓을 한건 아니고 '삭힌 단무지'를 넣은 김밥은 분명 맛있으니까 장사가 잘 된거죠. 뒷돈을 이용한 홍보마케팅을 하는 모습은 이 인물에 '악'의 이미지를 더 강하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긴합니다만, '임실 할머니 김밥'은 결국 맛 때문에 성공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겁니다. 단무지를 비싸게 공급하는 것도 결국 수요가 있으니까 가능한거죠. 꼭 나쁜 짓이라고만 볼 수 없습니다. 그게 싫으면 자신의 아이템을 개발해야죠. 남의 아이템을 가져오려면 그사람이 원하는 만큼의 대가를 줘야하는게 당연한거니까요.

당연히 선한 캐릭터도 충분히 이만근을 위협할 김밥을 들고 나올 수 있죠. 요즘처럼 급변하는 세상에서는 자기도 변할 줄 알아야지, 지 잘났답시고 우직하게 버티고만 있어선 아무리 장인이라도 아무 것도 안될 겁니다. 이만근은 변화하는 세상에 의해 위기가 찾아오자 처음엔 버텼습니다. 그다음엔 세상을 따라 했습니다. 따라만 해선 뒤쳐지진 않을지 몰라도 앞설 순 없었죠. '진짜 임실 할머니 단무지'를 공급받을 수 있었던건 우연이자 행운입니다. 결국 남을 따라한 아이템이고 오사장에게 종속된 아이템이기 때문에 남에 의해 무너지기 쉬운 화려한 모래성일 뿐이었습니다.

그 뒤에 드디어 이만근은 자신만의 장점에 자신만의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기로 결심을 하게 된겁니다. 남들과 변화하는 세상에서 배워야 하지만, 배우는 것에서 끝나면 결코 앞서갈 수 없는 거죠. 자신의 색을 넣어야 앞설 수 있는 겁니다. 이만근은 그걸 깨달아 다시 행복해질 수 있었죠.

대가는 '다름'을 인정한다.

두 번째 공연인 "윤이상, 나비 이마주"는 벌써 3번째 보는 공연입니다. 볼 때마다 배우들도 바뀌고 표현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는걸 보는게 재미가 있지요. 달라진 것 위주로 보고 있는데 윤이상 선생님의 독일 유학 장면을 보니 문득 뉴턴의 말이 생각나더군요.

독일로 유학가기 전에 이미 윤이상 선생님은 한국에서 인정 받은 작곡가 였던 것 같습니다. 나이 40이면 이제 슬슬 기성세대로 진입하는 시점이구요. 하지만 남의 것을 배우고자 유학을 갑니다. 유학 가서 서양의 음악을 배우고, 존 케이지나 백남준으로부터 파격적인 예술을 접합니다. 생각이 굳어져 갈 법도 한테 윤이상 선생님은 '틀림'이 아닌 '다름'으로 받아들이고 쭉쭉 흡수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한국의 색, 자신의 색을 넣어 세계적으로 인정 받기에 이릅니다. 아무나 대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무릎이 탁 쳐졌습니다. 저도 대학원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기 위해 공부를 하고 있는데 뭔가 하나의 방법을 발견한 느낌이었습니다.

세상을 거부하지도, 세상에만 휩쓸리지도 않으면서 자신의 색을 집어넣어야겠구나. 요게 이날 제가 공연 두 편을 보면서 최종적으로 든 생각입니다.

추가로 "내맛이 어때서" 공연 얘기

메시지 전달로 향하는 과정에서 다소 억지스런 전개나 억지스런 설정이 없었던 건 아닙니다만, 대체적으로 흐름이 무난했고 재미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전달하려는 메시지가 명확하면서도 제 입맛에 맞았지요. 주요 인물들의 연기력도 맛깔났습니다.

또 하나 제 눈에 좋아보였던건 바퀴달린 김밥집 틀을 움직이면서 무대에 대한 시점을 변화시켰던 점입니다. 공간이 아예 바뀌는 경우는 많이 있어도 같은 공간에서 시점만 바꿔주는 건 처음봤는데 굉장히 좋더군요.

추가로 "윤이상, 나비 이마주" 공연 얘기

윤이상 같은 경우에 주요 인물들의 연기력은 괜찮은데 멀티맨들의 연기력이 좀 아쉽더군요. 전 어떻게 보면 멀티맨의 연기가 더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인데요. 아무리 다른 사람인척 하면서 나와도 같은 사람인걸 관객들은 다 알거든요. 같은 사람이니까 아까 그 사람이 했던 역할, 이미지와 순간적으로 혼동이 옵니다. 이때 그 사람이 새로운 역할을 인상적으로 보여주지 못하면 극에 몰입이 안되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특히 이 공연은 멀티맨들이 의상도 갈아입지 않고 같은 모습으로 여러 역할을 연기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이 더 중요했는데.. 그부분이 참 아쉽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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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기회로 잠실 샤롯데씨어터에서 "오페라의 유령"(팬텀-윤영석, 크리스틴-최현주)을 봤습니다. 간만에 공연 관람을 하니 좋네요. 딱히 제 스타일은 아니지만 이런 웅장한 맛도 나름 맛나더군요.

웅장한 맛

공연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며 샹들리에가 공중으로 올려지자 가슴이 다 쿵쾅거렸습니다. 웅장한 음악소리와 함께 눈 앞에 펼쳐지는 웅장한 무대! 멋지더군요. 공연 내내 감탄의 연발이었습니다. 큰 극장이 아니면 할 수 없을 화려한 무대와 효과들이 펼쳐졌습니다. 언제 들어도 멋진 "오페라의 유령"의 넘버들이 라이브로 울려퍼졌습니다. 의상도 소도구도 화려했습니다.

웅장한 맛. 현실과 차단된 환상의 세계였습니다. 연극이나 뮤지컬이란 원래 관객들에게 환상의 세계를 경험하게 해주는 기능을 지니고 있죠. 그렇지만 요새 대학로 연극들은 그런 기능을 많이 활용하지 않습니다. 좀 더 현실과 가까운 이야기로 관객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켜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하죠. 물론 그런 이야기들도 엄밀하게는 환상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이렇게 환상만을 자극하는 공연은 많지 않죠. 이게 이 공연이 지닌 매력의 전부라는 게 아쉽지만(물론 전적으로 제 생각이긴합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매력적이더군요.

가슴을 흔드는 벅찬 감동은 어디에 있나요?

작품이 지닌 한계인지, 배우들의 연기가 문제인지, 연출자의 연출력이 문제인지, 아니면 제가 피곤한 상태여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 확실한건 전 '가슴을 흔드는 벅찬 감동'을 느끼지 못했다는 겁니다. 물론 워낙 유명한 작품이고 영화로도 이미 봤기 때문에 내용을 다 알고 봤습니다만, '세기를 넘어선 걸작' 이라면 여러 번 보아도 '가슴을 흔드는 벅찬 감동'을 느끼는 게 당연할겁니다. 이건 뮤지컬이지 콘서트나 뮤지컬 갈라쇼는 아닙니다. 뮤지컬이라면 스토리와 대사 전달에도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4월 10일판 "오페라의 유령"은 그런 점에 있어서는 낙제점을 받아 마땅합니다.

일단은 가사 전달, 아니 대사 전달이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일반 대사를 전달하는 것보다 노래의 가사를 제대로 전달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허나 뮤지컬에서 노래의 가사는 대사입니다. 대사가 전달되지 않으면 내용이 부실하게 전달되는 것이고, 그러면 감동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전 너무나 답답했습니다. 내 귀가 고장났나? 라는 의심까지 해봤습니다만 팬텀의 대사 전달은 매우 훌륭하더군요.(역시 팬텀은 아무나 하는게 아니라는...)

앙상블도 문제가 있어보였습니다. 대사 전달의 연장선상에 있는 문제이기도 한데, 종종 여러 인물들이 동시에 혹은 조금씩 겹쳐지게 노래를 하는 경우가 있더군요. 이럴 경우 대부분 조금씩 다른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더군요. 그냥 웅웅거리는 노래로만 들리구요. 소리도 별로 조화롭게 들리지 않더군요. 어떤 인물의 소리는 크고 어떤 인물의 소리는 작고... 이런 장면을 통해서 주요 인물들의 감정선에 변화가 생기거나 사건의 전환이 이루어지던데, 그런 장면들이 이래서야 어떻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요? 배우 간의 호흡 문제인지 엔지니어링의 문제인지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마지막으로 대형 뮤지컬의 고질적인 문제인지 이 작품만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연기의 디테일이 좀 부족해보였습니다. 다 아는 뻔한 이야기긴 해도 "오페라의 유령"은 충분히 감동이나 슬픔의 감정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됩니다. 부모에게까지 버림 받아 사랑을 갈구하며 숨어지내는 팬텀은 우리 한사람 한사람에게도 투영시켜볼 수도 있구요.(컴플렉스가 없는 사람은 없으니까요.) 그런데 그런걸 전혀 느낄 수가 없더군요. 단지 노래와 춤에만 올인한 듯이 보였습니다.

저에겐 이렇듯 아쉬운점이 많이 보여서 제 스타일은 아니더군요. 하지만 '간만에 문화생활 좀 했네?'라고 느끼기엔 이만큼 제격인 공연이 없을 것 같습니다. 좀 쓴소리를 하긴 했지만 저 역시 괜찮게 봤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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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감탄을 하고 왔습니다. 파격적으로 자연스러운 공연스타일도 그렇지만,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간직하고 있는 작품이어서 좋았습니다. 요새 인간에 대해 냉소적인 공연과 비극적인 공연을 많이 보는 바람에 마음이 무거웠는데 이 공연으로 훈훈한 마음을 품을 수 있게 됐네요.

이게 바로 진짜 리얼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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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이래도 되나?' 혹은 '이게 뭐야??'라는 생각이 들만큼 "세르쥬의 효과"는 현실 같은 연극입니다. 무대는 소박하지만 있을 건 다 있습니다. TV, DVD 플레이어, 오디오, 책, 탁구대 등등. 진짜 과자, 피자, 와인에 진짜 자동차까지 등장합니다. 조명은 형광등입니다. 그러나 과장된 연기, 관객을 의식한 연기는 없습니다. 배우들의 얼굴보다 등판을 훨씬 더 많이 본 것 같습니다. 특별히 기승전결로 맺어지는 이야기도 없습니다. 그냥 일상의 한조각을 보여줄 뿐입니다. 지난번에 본 "도쿄노트"와 비슷한 느낌도 있는데요. "도쿄노트"가 엿듣는 느낌이었다면 "세르쥬의 효과"는 벽에 구멍 뚫어 놓고 엿보는 느낌이랄까요.

세르쥬는 일요일 마다 친구들을 집에 초대해 공연을 보여주는 것이 취미입니다. 이름도 거창하죠. "헨델 음악에 맞춘 회전효과" "바그너 음악에 맞춘 빛의 효과" "존 케이지 음악에 맞춘 레이저 효과" "빅 체스넛 음악에 맞춘 폭죽 효과"와 같은 것들입니다. 근데 거창한 이름에 비해 공연은 너무나 허접합니다. RC카에 폭죽을 꽂고 달린다거나 음악에 맞춰서 헤드라이트를 깜빡거리는 정도죠. '이게 뭥미?' 하는 어색한 공기가 객석에도, 무대에도 형성됩니다. 하지만 바로 이 일상적인 어색함, 그 어색함이 주는 간격이 이 공연의 웃음포인트이자 관전포인트입니다. 별 내용 없는 이야기지만 보는 내내 킥킥거릴 수 있었습니다. 간간히 폭소도 터지구요. 어쩜 이렇게 만들 수 있는지. 연출자의 연출력과 세르쥬의 연기력이 놀라울 뿐입니다.

세르쥬의 친구들은 한국에 와서 모집한 일반인들이라고 합니다. 언제나 공연하는 도시에 가서 친구들을 모집한다고 하네요. 연습도 거의 안했고 특별한 대사도 없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연극적 연기가 아닌 일상의 모습이 나올 수 밖에 없겠죠. 세르쥬가 친구들을 어찌나 멋지게 받쳐주던지 전혀 튀지가 않더군요. 세르쥬도 일반인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길 정도로 말이죠. 이런 연기가 더 어려운 법인데 대단하더라구요.(저도 세르쥬 친구에 지원해보고 싶었는데 대학원 입시의 압박으로 ㅠㅠ)

소통하고자 하는 세르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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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세르쥬는 어설픕니다. 세르쥬의 공연도 어설픕니다. "세르쥬의 효과" 라는 연극도 왠지 어설픕니다. 그런데 그런 세르쥬를 보고 있으면 미소가 지어집니다. 친근하게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도 세르쥬가 어느 이야기 속 멋진 주인공의 모습이 아닌 우리의 모습과 더 닮아 있기 때문 아닐까요? 그리고 소통하려고 하기 때문 아닐까요?

세르쥬는 매주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하지만 그다지 활발하거나 대인관계가 썩 좋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친구들과도 그다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 않구요. 다만 소통을 위해 나름의 방식으로 노력합니다. 바로 공연이죠. 공연이 썩 멋지지는 않지만요. 어쨌건 친구들은 세르쥬의 공연을 계기로 모이게 됩니다. 모여서 얘기하고 와인을 마시고 피자를 먹습니다. 어색하지만 즐거워보입니다. 왠지 훈훈합니다.

세르쥬는 관객들과도 소통을 시도합니다. '금강제화' '롯데리아' 'GS홈쇼핑' 같은 한국의 상호를 대사 속에 등장시키고, 간단한 대사는 한국말로 합니다. "빨리요" "배웅해줄게" "뭐 좀 마실래?" "코트 받아줄게" 와 같은 말들입니다. 별거 아닌데 재밌고 기분이 좋습니다. 최대한 관객 눈높이에 맞추는거죠. 현지 일반인 친구 모집도 그런 맥락일 겁니다. 실제로 객석 반응도 좋았구요. 긴 대사는 일반인 출연자가 통역하는 방식을 택해서 자막 사용도 최소화하고 있습니다.

다가가고 싶지만 어색해 하고 방법을 모르는 게 현대인의 모습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래서 점점 단절되어가는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꼭 세련된 방법이 필요한 걸까요? 소통을 위한 노력과 마음가짐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요? 세르쥬처럼 투박하게라도 시도해보는 게 어떨까요.


이 포스트에 쓰인 이미지는 모두 인용의 목적으로 쓰였습니다.
이미지에 대한 권리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 Vivarium Studio, Martin Argyroglo에 있음을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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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ative Commons License
2009/11/20 01:45 2009/11/20 01:45


  1. Phoebe
    2009/11/20 11:54
    신선하기도 하고 나름 재미도 있겠네요.^^
    • basecom
      2009/11/20 13:49
      네^^ 해외초청공연들이 좋은건 다들 한가닥하는 공연들이기때문이에요 ㅎㅎ 자막 보는 불편함이 있긴하지만.. 다 이유가 있어서 초청까지된거니까^^
  2. 모모군
    2009/11/20 13:40
    독특한 연극이겠습니다. 저도 세르쥬의 친구로 초대 받고 싶어졌습니다. ㅎㅎ
    • basecom
      2009/11/20 13:51
      제가 얼마나 세르쥬의 친구로 초청받고 싶었는지 ㅠㅠ 무대에서 피자랑 와인을 진짜로 먹는데.. 샘나더라구요 ㅎㅎ
  3. 드자이너김군
    2009/11/20 18:04
    오~ 뭔가 심오하게 재밋을것 같은.. ㅋ
    정말 리얼리티군요..+_+
    • basecom
      2009/11/20 18:08
      심오할 것 같은데 보면 하나도 안 심오해요 ㅎㅎ
      그냥 좀 어이없어서 킥킥대게 되는데
      보고나면 어? 하는 뭐 그런...^^;
  4. gemlove
    2009/11/20 21:19
    신기하네요 ㅎ 연극이라는 느낌이 안들꺼같아요 ㅎ 마치 일상생활을 제3자가 관찰하는 느낌? ㅋ 근데 소통을 시도한다고도 하니 ㅎㅎ
    • basecom
      2009/11/20 23:12
      네 맞아요. 일상생활을 제3자가 관찰하는 느낌이죠 ㅎㅎ 어차피 연극이나 모든 공연예술이 관객에게 무언가를 얘기하려고 하는 게 목적인데, 그럴려면 공감할 수 있게 해야하거든요.
      직접적으로 관객을 끌어들이거나 하는 부분은 없지만 공감대형성이라든가 하는 부분에서 소통한다고 생각했어요^^
  5. 김뽀
    2009/11/21 13:41
    색다른 공연인것 같아요^^
    저도 훈훈함을 함께 느끼고싶어요~~
    • basecom
      2009/11/21 17:12
      ㅎㅎ 세르쥬는 이미 프랑스로 돌아갔을 것 같고.. 다른 훈훈한 공연을 추천해드려야겠네요. 마침 연말이라 훈훈한 공연시즌이긴합니다 ㅋㅋ
  6. 탐진강
    2009/11/22 17:59
    좀 독특하고 재밌는 연극인 듯 합니다.
    연극을 좀 봐야 하는데 요즘은 못보고 있어요ㅠㅠ
    • basecom
      2009/11/22 18:30
      네 ㅎㅎ 해외초청작들은 기회가 있으면 꼭 보세요. 언제 다시 우리나라로 공연올지 모르니까^^
  7. 감성PD
    2009/11/23 15:06
    특이한 연극인 것 같군요...
    어색해하지만 꾸준한 소통을 하려는 모습이 좋아보여요.
    • basecom
      2009/11/23 15:57
      네 ㅎㅎ 연극에서뿐 아니라 현실에서도 필요한 자세를 유머러스하게 보여주니까 참 좋았어요^^
  8. 분홍별장미
    2009/11/24 16:39
    은은한 즐거움이 있을것 같네요.
    또다른 나를 볼수있는 계기도
    될것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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