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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히 신기한 경험을 했다. 연극을 봤는데, 내용이 잘 이해가 안되고 알쏭달쏭하다. 보통 이정도 난해함이면 지루하거나 답답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않다. 단순히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흡입력이 있는 공연이었다. SPAF의 해외초청작들은 대부분 일정량의 난해함을 기본으로 지니고 있어서 동행할 사람을 찾기 쉽지 않은데 이 작품은 누구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입장하니 이미 배우들은 무대 위에 나와있었다. 뭔가 불안하고 경계하는 눈빛과 몸짓이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걸까? 어떤 상황인걸까? 공연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공연으로 빨려들어가고 있었다. 이런 형태를 띄는 공연들은 종종 있지만 이토록 잘 살린 공연은 드물다. 극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 공연 예매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딱 들면서 기대감이 증폭될 정도니 말이다.

공금을 횡령하고 직장에 나오지 않고 있는 아빠를 잡기 위해 찾아온 경찰은 아빠가 죽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수사를 시작한다. 가족들은 심장마비였다고 하지만 누가 봐도 수상한 상황이다. 뭔가 감추는 것이 확실하다. 딸이 처음 입고 있던 의상은 왠지 이를 상징하는 듯 했다. 점퍼는 벽지무늬와 같은 무늬였으며, 점퍼 안은 바로 속옷차림이었다. 점퍼와 집의 벽을 연결해보면 집 안에 여인의 속옷차림처럼 은밀하고 숨겨야할 무언가가 있음을 의미하지 않을까. 게다가 딸은 바지를 입고 있지 않았다. 이는 점퍼로 감추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드러난 치부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딱 여기까지 따라가고 이후로는 모호함 투성이였다. 대사와 동작들이 독특했다. 형사가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어색한 순간 혹은 변명 생각하는 순간을 마치 아브라카다브라 춤같은 모션으로 표현하고, 벽을 뚫고 퇴장하기도 하고, 탭댄스 같은 스텝을 구사하기도 하고 셔플인지 막춤인지 알 수 없는 춤을 추기도 한다. 관객에게 한국말로 '시끄러' 라고 할 정도로 묵념을 강요하기도 하고 관객의 가방과 옷가지를 뺐기도 한다. 깨알같은 재미를 주는 요소임과 동시에 모호하고 헷갈리게 만드는 요소였다.

어쨌든 형사와 관객들이 가장 궁금해하는 건 누가 왜 아빠를 죽였냐는 것인데 끝까지 답은 나오지 않는다. 극중 꿈인지 생각인지 다른 유사사건인지 모르게 몇 가지 일가족 살해사건이 브리핑된다. 마치 수사결과를 발표하듯이. 맨처음 엄마가 일가족을 독살했다는 사례를 브리핑하면서 딸이 마당에 죽은 고양이를 이야기하고 형사가 갑자기 죽을 땐 이게 진실인 줄 알았다. 하지만 그 뒤로 베이스 연주자는 모든 가족이 동반자살했다는 노래를 하고, 딸은 가족소풍 중에 딸이 총으로 가족 모두를 죽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형사는 아빠가 가족 모두를 죽인 이야기를 한다. 누군지 기억이 안 나는데  가족들에게 진정제를 먹인 뒤 자는 중 돌로 쳐죽였다는 이야기도 하고, 공연 내내 기어다니거나 구석에 짱박혀있던 아들은 온 가족이 칼에 찔린 그림을 그렸다. 마치 영화 "살인소설"의 필름들이 생각난다.

뭘까? 뭐가 진실일까? 살해동기로 의심되는 것도 찾아보기 어렵다. 가족은 가장 편안하고 아늑하고 믿을 수 있는 안식처라고 생각되지만 사실은 가족이 개인을 힘들게 하기도 하며 그 개인들은 가족을 전부 죽이고 싶다는 마음을 갖고 있다는 이야길 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다면 그러한 동기들로 인해 아빠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의해 정말 심장마비로 죽었다고 볼 수도 있는걸까. 아리송하다.

덧)
폴란드가 자랑하는 곰브로비치라는 작가의 단편 2개를 엮어서 만든 공연이라는데, 작가와 작품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더 어려운 것 같기도 하다.

딸 역을 맡은 배우의 매력 발산이 제대로 이루어졌다. 연기도 외모도 인상적이었다. 배우의 매력과 캐릭터의 매력이 최적의 비율로 섞여있었다.

무대는 단촐한 듯 보였는데 뚫리는 벽이나 노크하면 모든 필요한 소품을 뿅하고 워프시켜주는 서랍 등 재밌는 장치들이 숨겨져 있었다.

자막이 굉장히 매끄러워서 감동했다. 싱크가 잘 맞는 것은 물론, 잘 보이고 배역 별로 색을 다르게 해서 보기 아주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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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3 23:02 2013/11/03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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